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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 - 편혜영
The hole
Notes
갑작스러운 사고로 전신이 마비된 오기는 같은 사고로 아내를 잃고, 장모와 단둘이 남는다.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그는 비로소 그동안 무시하고 지나쳤던 일상 속의 균열을 마주하게 된다. 아주 작은 일탈과 소음들이, 관계의 엇갈림과 만나 어떤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를.
우리는 사실 너무 모른다. 괜찮은 것과 괜찮지 않은 것의 경계를 어떻게 나눠야 하는지조차 모른다. 모르면서도 아는 척한다. 괜찮고 싶고 괜찮아야 할 때, 안 괜찮은 것도 괜찮다고 말하며 스스로에게, 서로에게 강요하다가 상처 주고 상처받는다.
인간관계에서 생긴 사소한 오해와 실수에 함께 주목할 수 있을 때까지는 아직 괜찮다. 서로에게 해야 할 이야기와 들어야 할 이야기가 아직 남아 있다는 것에 동의하고, 그것을 나눌 수 있을 때까지는. 하지만 거기서 눈을 돌리는 순간 구멍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진다. 혼자서는 영원히 메울 수 없을지도 모른다. 커질 대로 커진 구멍은 결국 내가 빠지거나, 상대를 빠뜨리거나, 아니면 서로 그 구멍으로부터 도망치게 만든다.
오기는 마지막 순간, 구덩이로 떨어지며 아내와 함께 보냈던 평범한 하루를 떠올린다. 단단하게 메워져 있어 무엇을 시작해도 나쁘지 않을, 그저 평범했던 땅과 바닥과 시간을.
가끔은 지나쳐온 구멍들을 다시 매만지며, 그 곁에 조금 더 머물러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