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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의 시대 - 이디스 워튼

The Age of Innocence (1920)

순수의 시대 표지|150

Notes

“좋아요. 당신 뜻대로 하겠어요.” 그녀가 불쑥 말했다. 그는 이마로 피가 확 쏠리는 기분으로 그녀의 갑작스러운 굴복에 당황하여 어색하게 그녀의 두 손을 잡았다. “저는…… 당신을 진심으로 돕고 싶습니다.” 그가 말했다. “정말로 도움이 되었어요. 안녕히 가세요. 친척 오라버니.” 그는 허리를 굽히고 그녀의 손에 입술을 대었다. 그녀의 손은 죽은 사람의 손처럼 싸늘했다. 그녀가 손을 거두자, 그는 문을 나와 복도의 희미한 가스등 아래에서 외투와 모자를 찾아 말더듬이들의 때늦은 웅변으로 가득 찬 겨울밤 속으로 뛰쳐나왔다.

특히 1층부터 꼭대기까지 극장 전체를 사로잡은 장면이 있었다. 거의 대사가 없는 다이어스 양과의 슬픈 이별 장면 후, 해리 몬테규가 그녀에게 작별을 고하고 나가려고 돌아서는 장면이었다. 벽난로 옆에 서서 불을 들여다보는 여배우는 유행을 따른 루핑이나 주름 장식도 없이 큰 키에 맞게 발치까지 길게 흘러내리는 회색 캐시미어 드레스 차림이었다. 목에는 가느다란 검은색 벨벳 리본을 두르고 끝을 등으로 늘어뜨렸다. 애인이 몸을 돌리자 그녀는 벽난로 위에 팔을 괴고 얼굴을 묻었다. 그는 문지방에서 발을 멈추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살그머니 되돌아와서 벨벳 리본의 한쪽 끝을 잡고 입을 맞춘 다음 방을 나갔으나, 그녀는 그의 기척을 듣지도 못했고 자세를 바꾸지도 않았다. 이 침묵의 이별을 끝으로 막이 내렸다.

윈셋은 자기가 만드는 잡지인 <가정의 불꽃> 얘기만 나오면 지치지도 않고 떠들었지만, 그 밑에는 한때 애써 보았으나 포기하고 만 젊은이의 무력한 쓰라림이 숨어있었다. 아처는 그와 대화할 때마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그것이 얼마나 빈약한가를 느끼곤 했다. 그러나 윈셋의 삶은 훨씬 더 빈약했다. 그들이 공유하는 풍부한 지적 관심과 호기심 덕분에 항상 매우 즐거운 대화를 나눌 수 있다 해도, 주고받는 이야기는 보통 사변적인 딜레탕티즘의 범위를 넘지 않았다.

문이 다시 닫히자 아처는 증오에 찬 눈으로 그녀를 계속 쏘아보았다. “왜 그런 희생을 하는 거요? 외롭다고 내게 말 한 이상 당신이 친구를 만나지 못하게 막을 권리가 내겐 없소.” 그녀는 젖은 속눈썹을 내리깔고 보일락 말락 미소했다. “난 이제 외롭지 않을 거예요. 전에는 외로웠어요. 두려웠지요. 하지만 공허함과 어둠은 사라졌어요. 이제 나 자신에게로 돌아오니 한밤중에도 항상 밝게 불이 켜져 있는 방으로 들어가는 어린아이 같은 기분이에요.”

아니면 그들이 하려는 말은 각자 고립되어 행복한 침묵에 빠져있을 때에만 서로에게 가장 잘 전달되는 것인지도 몰랐다.

마침내 그녀가 입을 열었다. “당신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런 고백을 이보다 더 감흥 없이, 상대의 허영심을 전혀 기쁘게 해 주지도 않는 투로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처는 관자놀이까지 온통 새빨개져서 감히 움직이지도, 입을 열지도 못했다. 그녀의 말은 희귀한 나비 같아서 아주 가벼운 움직임에도 놀라 날개를 퍼덕이며 날아가 버릴 테지만, 그대로 두면 나비 떼가 모여들 것만 같았다.

이제 그는 과거를 돌이켜보면서 자신이 관습 속으로 얼마나 깊이 가라앉아 버렸는가를 절감했다. 의무를 다한다는 것의 가장 나쁜 점은 그 밖의 다른 일을 하는 데는 분명히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적어도 그의 세대 사람들은 그랬다. 옳은 것과 그른 것, 정직과 부정직, 존경할 만한 것과 그렇지 못한 것 사이에 명확한 경계가 그어져 있어서 미처 예측하지 못한 것이 존재할 여지가 거의 없었다. 자신이 사는 세계에 너무나 쉽게 길들여져 있던 상상력이 갑자기 평범한 일상을 뚫고 솟아올라 널따랗게 펼쳐진 운명을 조망하는 순간이 있다. 아처는 거기에 매달려서 의아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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