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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정치:신자유주의의 통치술 - 한병철

자유는 결국 에피소드로 끝날 것이다

심리정치 신자유주의의 통치술 표지|150

Notes

우리는 자유 자체가 강제를 생성하는 특수한 역사적 시기를 살고 있다. 할 수 있음의 자유는 심지어 명령과 금지를 만들어내는 해야 함의 규율보다 더 큰 강제를 낳는다. 해야 함에는 제한이 있지만, 할 수 있음에는 제한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할 수 있음에서 유래하는 강제는 한계가 없다.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는 억압적 지배 관계를 전제한다. 하지만 신자유주의의 자기 착취적 질서 속에서 사람들의 공격성은 오히려 자기 자신을 겨냥한다. 이러한 자기 공격성으로 인해 피착취자는 혁명가가 아니라 우울증 환자가 된다.

신자유주의 권력 기술의 목표는 인간을 온순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의존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오늘날 자유의 위기는 자유를 부정하고 억압하기보다 자유를 착취하는 권력을 상대해야 한다는 데서 비롯된다. 자유로운 결정은 마리 정해져 있는 가능성들에 대한 선택으로 전락한다.

오늘날의 호모 사케르는 더 이상 시스템에서 배제된 자가 아니라 시스템에 갇힌 자다.

“저 불행에 빠진 영혼의 긴장, 그 긴장이 영혼에 심어주는 강인함(……) 불행을 견디고, 버티고, 해석하고, 이용하는 영혼의 창의성과 용기, 그리고 예로부터 비밀, 가면, 정신, 계략, 위대함으로부터 영혼에 선사된 것 - 그것을 영혼은 괴로움 속에서, 엄청난 괴로움의 훈육 속에서 선사받지 않았던가?”
-니체 <선과 악의 저편>

마르크스의 가정과는 달리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변증법은 자유로 이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를 새로운 착취 관계 속에서 얽어맨다. 이제 우리는 마르크스와 함께 마르크스를 넘어서 사유해야 할 것이다. 자유를, 자유로운 시간을 정말 우리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면 말이다. 자유로운 시간은 오직 노동의 타자만이, 생산력이 아닌 다른 힘, 어떤 노동력으로도 전환되지 않을 어떤 힘만이 가져다줄 수 있는 것이다. 즉 생산 형식이 아닌 어떤 삶의 형식, 완전히 비생산적인 어떤 것.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생산의 피안에서 쓸모없는 것의 쓸모를 찾아낼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진정한 행복은 일탈과 방종함, 풍부함, 무의미함, 넘침, 잉여에 있다. 즉 필요, 노동과 성과, 목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순수한 내재성은 심리화되지도, 예속화되지도 않은 공허다. 내재적 삶은 비어있는 만큼 더 가볍고, 더 풍부하고, 더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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