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 이야기 - 얀 마텔
Life of Pi
Notes
모든 신을 사랑했던 파이는 동물원을 폐업하고 캐나다로 이주하기 위해 동물들과 배를 탔지만, 배가 침몰해 버리고 얼룩말, 하이에나, 오랑우탄, 벵갈 호랑이와 구명보트를 함께 탄다. 망망대해 위에서 ’리처드 파커’를 경계하고, 두려워하고, 가여워하고 의존하고… 결과적으로는 200일이 넘는 시간 동안 생존을 위해 사투를 벌인다. 파이는 정말 구명보트를 동물들과 탔을까?
영화도 봤는데 책이 훨씬 좋았다. 파이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철학적 고민들이 영화에서 다르기에는 지나치게 관념적이다
영화도 봤지만 책이 훨씬 좋았다. 파이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철학적 고민들은 영화가 다루기엔 지나치게 관념적이다. 조난 초반의 살육 장면은 너무 고통스러웠다. 그것이 야생의 방식이라지만, 동물의 고통에 대한 묘사는 읽기 힘들 정도였다.
마마지는 작가에게 파이를 소개하며, 그의 경험담을 들으면 신을 믿게 될 거라고 말했다. 처음엔 이 말이 어떤 맥락에서 나온 건지 이해가 잘 안 됐다. 하지만 파이의 표류기를 따라가다 보니 알 것 같았다. 생명이 꺼져가는 순간에도 자연은 견고하게 정해진 룰대로 태어나고 소멸하며 빛을 낸다. 작은 우주와도 같은 하나의 생명체가 겪는 고뇌와 불행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발밑에 상어가 지나가고 배고픈 호랑이가 곁에 있어도, 하늘과 바다는 여전히 아름답다. 어쩌면 마마지가 말한 신앙은, 이 무심하고도 아름다운 세계의 질서 앞에서 느끼는 경외감 같은 게 아니었을까.
의심을 인생철학으로 선택하는 것은, 운송수단으로 ’정지’를 선택하는 것과 비슷하다.
근본을 흔드는 공포, 생명의 끝에 다가서서 느끼는 진짜 공포는 욕창처럼 기억에 둥지를 튼다. 그것은 모든 것을 썩게 한다. 그것에 대한 말까지도 썩게 만든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표현하기 위해 힘껏 싸워야 한다. 거기에 말의 빛이 비추도록 열심히 싸워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가 피하려고 하고 심지어는 잊으려 하는 고요한 어둠으로 다가오면 우리는 더 심한 공포의 공격에 노출된다. 우리를 패배시킨 적과 진정으로 싸우지 않았으므로.
상반되는 것중 최악은 권태와 공포다. 우리 삶은 권태와 공포 사이를 왔다 갔다 하는 추다. 바다가 주름살 하나 없다. 바람의 속삭임조차 없다. 시간이 영원가지 계속될 듯하다. 어찌나 권태로운지, 의식불명에 가까운 상태로 빠진다. 그러나 바다가 거칠어지면 감정은 광풍에 휩싸인다. 그러나 이 두 상반되는 것조차 명확하게 남지 않는다. 권태 속에는 공포라는 요소가 있다. 눈물을 터뜨린다. 끔찍함이 당신을 가득 채운다. 비명을 지른다. 일부러 자해를 한다. 한데 공포의 손아귀-최악의 폭풍우-속에서도 당신은 권태를 느낀다. 그 모든 것과 함께 깊은 나른함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