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정복 - 버트런드 러셀
The Conquest of Happiness (1930)
Notes
외부에 대한 관심은 어떤 활동을 할 마음을 불러일으키는데, 그 관심이 살아있는 한 사람은 결코 권태를 느끼지 않는다.
일상적인 욕망을 쉽게 충족시킬 수 있는 사람은 욕망의 충족이 곧 행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결론짓는다. 만약 철학적인 기질을 가진 사람이라면 원하는 것을 빠짐없이 가지고 있어도 불행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인간의 삶은 본질적으로 비참한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이런 사람은 원하는 것들 중 일부가 부족한 상태가 행복의 필수 조건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드는 또 한 가지는 늘 낯선 사람과 대면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다른 동물들도 그렇지만, 인간은 자연적 본능 때문에 낯선 상대를 만날 때마다 우호적인 태도를 취할 것인지 적대적인 태도를 취할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상대를 탐색한다. 혼잡한 출퇴근 시간에 전철을 타고 다니는 사람들은 이러한 본능을 억제해야 하고, 본능을 억제하다 보면 본의 아니게 만나게 되는 낯선 사람들 일반에 대해서 분노를 느끼게 된다.
현명한 사람은 고민을 하는 것이 효과가 있을 때에만 고민하고, 고민을 해도 효과가 없을 때에는 다른 생각을 하며, 밤에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나의 행동은 내가 흔히 생각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아니며, 결국 내가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 또한 그리 중요한 일이 아니다. 인간은 아무리 큰 슬픔도 이겨낼 수 있다.
자신의 생각과 희망을 자아를 넘어선 어떤 것에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은 일상생활의 걱정거리 속에서도 어느 정도 평화를 얻을 수 있다.
현명한 사람은 누군가가 가지고 있는 어떤 것 때문에 자신의 즐거움을 망치지 않는다. 사실 질투는 도덕적으로나 지적으로나 일종의 나쁜 버릇이다. 질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고 사물 사이의 관계를 통해 보려는 데서 생긴다.
자기기만에 기초한 만족은 결코 확고하지 못하다. 그러므로 진실이 아무리 불쾌한 것일지라도 단호하게 그것을 직시하여 그것에 익숙해지고, 그 진실에 입각하여 자신의 삶을 구축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중에게 관대한 태도를 기르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참된 행복을 누리는 사람들의 수를 늘려서, 그들이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데서 으뜸가는 즐거움을 찾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다.
인간은 보다 큰 위험을 두려워하고 있을 때에는 언제나 보다 작은 위험 속에 발을 내디딜 용기를 갖는 것이다. 하나의 위험을 무한히 두려워할 때에는 그 밖의 온갖 위험은 전혀 존재하지 않음과 마찬가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