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 - 마티아스 뇔케
Understatement
Notes
자신의 이야기를 한껏 과장해서 떠드느라 바쁜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다 보면, 알 수 없는 불안과 초조함이 밀려온다. 그리고 비로소 실감한다. 겸손의 미덕이야말로 우리를 가장 편안하게 해주는 가치라고 느껴지는 것이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품고 있는 태도‘ 이게 바로 겸손함이다.
성공지향형 사람들은 거창하게 보이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주의를 끌어야 한다. 단순히 안부를 묻는 이야기에도 그들은 자신의 성공을 떠들어댄다. 그런 과장된 행동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해 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만일 따르는 이도 없는데 성공법에 대해 떠든다면, 성공한 사람이 아니라 인정받고 싶은 욕구만 거대한 수다쟁이에 불과할 테니까.
내면의 힘을 믿는 사람들은 자신의 명함을 금박으로 치장하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다.
상대방에게 기울이는 관심의 비용은 점점 더 비싸진다. 누군가가 주의 깊게 내 말을 들어주는 일은 점점 더 드물어진다. 그러니 타인에게 주목받기 위해 다들 혈안이 된다. 누가 나를 알아주지 않으면 나는 존재하는 게 아닌 것만 같아서 눈에 띄려고 더 큰 소리를 내고 애를 쓴다.
모든 과장된 언행의 배후에는 두려움이 숨어있다. 언제든 대체될 수도 있고, 잉여가 될 수도 있다는 두려움 말이다.
미국의 사회학자 로버트 풀러는 이를 ‘서열주의’라고 불렀다. 서열주의는 다양한 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이 누군가에게 악수를 청하는 방식, 어떤 사람을 지나치면서 그를 바라보는 방식, 당신이 질문을 하거나 다른 사람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는 방식, 당신이 방에 들어설 때의 태도, 다른 사람들의 말에 참견하고 그들의 태도에 대해서 해석을 달아주는 방식 등등이다.
그들은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정하고, 그 가치를 스스로 높여가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들의 마음에는 이런 바람이 있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더 깊고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바람, 남에게 칭찬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한 삶을 살고 싶다는 바람, 타인보다 월등하게 높은 곳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땅에 발을 딛고 서서 남들과 더불어 잘 살고 싶다는 바람 말이다.
겸손은 사람에게 매우 친화적인 태도이며, 삶을 살아가는 데 있어 긴장하지 않는 자세다.
미래에 대한 목표는 순간적으로 쾌감을 주기도 하지만, 장기적인 시각에서는 오히려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머릿속으로 이미 성공을 한 사람들은, 더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거의 달성할 수 있을 것 같은 목표를 선택한다. 그러고 나서 그 목표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실제로 한다.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웬만하면 그 목표에 대해 굳이 이야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어떤 경우에도 상대와 마주 않아서 모든 것이 잘되면 무슨 일이 생길지에 대해 섣불리 떠들지 않는다.
성공을 위해 과도한 목표를 바라보며 달리는 사람은 충만한 삶을 누리지 못한다. 오히려 삶을 살면서 기진맥진해 버리기 쉽다.
상대에게 ‘내가 너보다 더 낫고, 더 강하고, 더 중요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는 것을 원치 않는 것이다. 그들은 상대가 불편함을 느끼거나 부족함을 느끼는 걸 원치 않는다. 때문에 스스로 뒤로 물러남으로써 상대가 편안하게 느끼도록 해준다.
겸손함은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인 동시에 자의식을 보여주는 가장 효과적인 방식인 것이다. 마지막 세 번째 측면은, ‘겸손은 독립되어 있다는 표시’라는 점이다. 겸손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박수갈채와 최고라는 평가를 수집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이들은 자신들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이를 외부로부터 인정받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소크라테스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은 그 안에 이성이 담겨 있음을, 전적으로 신성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리석게도 그를 비웃는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소크라테스적인 아이러니”라고 부른다. 겉으로 드러난 것과 숨겨진 실제 사이의 괴리를 뜻하는 ‘아이러니’는 바로 ‘에이런’에서 유래한 말이다.
따라서 자랑하고 싶은 감정을 절제한다는 것은 기뻐하는 마음에 재를 뿌리는 게 아니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을 통제하고 사려 깊게 행동한다는 뜻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경계 너머를 위해 나를 소모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퇴선을 다한다는 의미다. 남이 정한 경계는 나를 가두지만, 내가 정한 경계는 나를 규정하는 것이다. 그것은 끝이나 한계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정체성을 세우는 표시다. 탄탄한 자존감을 갖고 있다면 외부의 평가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자신에 대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견해는 가려들을 수 있는 것이다.
허풍은 받아들일 수 있지만, 겸손함을 떠벌리는 행동은 거부했고 심지어 경멸에 가까운 평을 하기도 했다. 특히 사람들이 쉽게 얻을 수 없는 성과를 이룬 일에 대해 불평을 터뜨리면 상당히 거만하다고 느꼈다.
이처럼 능력이 없는 사람이 잘못된 결정을 내려 부정적인 결과가 나타나도 능력이 없어 스스로의 오류를 알지 못하는 현상을 심리학에서는 ‘더닝 크루거 효과’라고 부른다.
강해 보이려고, 능력이 많은 사람처럼 보이려고, 똑똑해 보이려고 당신의 에너지를 낭비하지 마라. 과장된 포장은 결국 벗겨지지 마련이다. 자신만의 에너지를 비축해 두려면,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거나 사람들로부터 과대평가 받는 상황과도 거리를 두는 게 현명하다. 어떤 사람도 당신을 소진시킬 권리는 없다. 당신은 비상시를 위해 에너지를 남겨둬야 하며, 그 누구도 당신이 비축해 둔 에너지를 함부로 가져가서는 안 된다. 사실 비상용 에너지의 본질은 가능하면 사용하지 않는 데 있다.
그러나 반대로, 상대의 행동은 전부 특정한 의도가 있다고 여긴다. 그럴 만한 사정이나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일부러 나쁜 마음으로 혹은 알면서도 무성의하게 그렇게 행동한 거라고 단정하는 것이다. 그러면 결국 자신은 지극히 정상인데, 상대는 그렇지 않다고 결론내려고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게 된다.
능력을 특별히 증명해 보일 필요 없이 동등하게 존재하는 것, 그것이 우정으로부터 얻는 기쁜이기 때문이다.